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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ul Lee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행17: 1-9

데살로니가에 온 바울 일행은 야손의 집에 머무르며 세 번의 안식일 동안에 유대인들의 회당에 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본문에는 바울이 규례대로 행하는 세 가지일이 나오는데, 안식일마다, 회당에 가서, 성경을 가지고 강론한 것입니다. 우리도 주일마다 예배당에 가서 성경을 들으며 규례대로 강론을 전하고 듣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니아성의 성도(城都)로서 20만의 인구를 가진 큰 도시였습니다. 거기에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10명 이상의 성인남성이 모이면 회당을 세우니까 그곳에 상당한 유대인들이 있었다고 보아야합니다. 당시 유대교의 예배는, 찬양으로 시작하여 기도를 드린 후 쉐마를 읽었습니다(신 6:4-9). 쉐마를 교독한 후 다시 기도문을 암송하며 성경을 낭독하고 해석하며 축도하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설교 혹은 강론이라고도 하는데, 강론의 중심은 성경이며, 이를 배우고 믿게하는데 강론의 목적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강론한 성경은, 신약성경이 아닌 구약성경입니다. 그리고 보다 엄밀히 말하면, 율법과 선지서의 글과 시편에 나온 내용들이었을것입니다. 구약성경은 오실 그리스도를 담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우리 가운데 오신 그리스도 그리고 그가 허락하신 구원과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담고 있습니다.

바울이 강론한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해 받으실 것을 풀어 설명하였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메시아’의 헬라어 번역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우리말로 하면 ‘이 세상의 구원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정복당한 이래로 계속하여 타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왔던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시기를 전후하여 “이방인의 억압으로부터 이스라엘 나라를 자유케하고, 이스라엘 민족으로 온 세상 민족위에 왕 노릇하도록 만들어 주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을 이스라엘의 구원자 곧 메시아”를 대망하는 사상이 발전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아의 구원은 억압적 상황으로부터의 해방이 주된 내용입니다. 또한 개인적인 구원보다는 선민으로서의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집단적인 구원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죄로부터의 해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소망으로 기대하는 메시아가 이 세상에 와서 죄인의 몸으로 나무(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유대인들은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와같은 사고의 전환을 위해서, 사도 바울은 이사야 53장의 말씀에 나오는 오실 메시아의 고난에 대한 예언이나, 이사야 61장에 나오는 새로운 메시아의 나라와 그 성격에 대해 강론하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둘째,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이를 증명하는데 힘썼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쉽게도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바울의 증명에 대해 상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 부분을 더 설명드릴 수 없습니다.

바울은 셋째, 예수님이 곧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이 곧 그리스도시라는 바울의 강론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복음입니다. 그러나 이 복음은 세상가운데 늘 오해되어 왔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앞길을 평탄케하기 위하여 온 세례요한 조차도,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리이까”하고 질문할 정도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은 세상으로부터 항상 오해되어 왔습니다. 예수님이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복음을 인하여 우리는 오늘 여기 머리 숙여 있는줄로 믿습니다. 바울의 이 선언을 나의 믿음의 이유와 근거로 삼고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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