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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ul Lee

[더 신사적인 사람들] 행17: 10-15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베뢰아 사람이 데살로니가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신사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유게네스’인데 마음이 열려있다(open-minded, 편견이 없다fair-minded) 정도로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구절을 읽으실때에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성격이 좋아서 혹은 젠틀해서…하고 그 다음에 나오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베뢰아 사람이 데살로니가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서 베뢰아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한 것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일에 베뢰아 사람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었음을 주목하셔야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베뢰어 사람은 일차적으로 베뢰아에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열려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편견없이 받아들였습니다 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세는 어떤 결과를 초래했습니까?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보다 베뢰아에 있는 유대인들이 훨씬 더 많은 숫자가 복음을 받고 그리스도의 구원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베뢰아에 있는 유대인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습니다. 상고한다는 말은 따져보고, 연구해 보고 한 것입니다. 이단들도 성경공부합니다. 우리보다 훨씬 많이하고, 훨씬 많이 암송하고, 훨씬 많은 성경구절을 안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모두 인정하실 것입니다. 사실, 모든 이단은 성경을 공부하다가 나오는 것입니다.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를 왜곡되게 한다는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성경을 많이 읽고 암송하고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이 그러한가 하여 상고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때에 베뢰아 사람들은 성경에서 무엇을 따져보고, 무엇이 과연 그러한가를 연구했을까요? 1)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는다는 바울의 강론의 내용이 맞는지? 2)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다는 바울의 말이 맞는지? 3) 바울이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가 맞는지?(행17: 3)를 연구했을것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왜, 무엇때문에 이것을 따져보고, 과연 그러한가를 연구해야 했습니까?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 39)”. 성경을 상고하는 궁극은 결국 누구에게로 나아오는 것이어야합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로 인도하지 않는 모든 성경공부는 잘못된 것입니다.

라틴어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De Omnibus Dubitandum(데 옴니부스 두비탄둠)

: be suspicious of everything, doubt everything “모든 것을 의심하라”그러므로, 모든 설교를 의심하십시오. 모든 성경공부를 의심하십시오. 바로 믿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조심하십시오. 구원은 성경공부나 설교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통로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만 받습니다.

성경을 상고하기 위하여, 1) 편견에 물들기 전에 먼저 아무런 선입견 없이 성경을 한 두번 통독하실 것을 말씀드립니다. 2) 성경의 기록시기에 따른 순서를 따져가며, 성경 각 권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를 공부하셔야합니다. 그러면서 초대교회가 가졌던 점진적인 복음에 대한 이해을 같이 공유하는 노력을 기울여 주셔야합니다. 3) 우리 교회의 성경공부에 참석하셔셔 성경을 한 절 한 절 읽어가며 균형잡힌 이해를 갖도록 노력해 주십시오.4) 더 깊이있는 공부를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목요일 밤에 진행되고 있는 교회의 역사/ 교회 신학의 역사 공부에 참석해 주십시오. De Omnibus Dubitand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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